개발자의 증언

김박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박사님은 전세계에서 천연당뇨병치료제로서 가장 성공한 엘레오틴을 개발하신 분으로 알려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사용하시고 좋은 효과를 보신 30만명 이상의 환자분들께서 열심히 선전해 주신 덕분이고, 3000명 이상의 의사분들께서 환자분들에게 열심히 권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런데, '당뇨치료제'라는 표현은 좀 조심하고 싶군요. 저희 제품은 나라에 따라, 약으로, 식품으로, 건강보조 식품 등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생산국인 캐나다에서는 ‘정상혈당을 회복(촉진/초래/조성/증진)하는 자연건강제품 Natural Health Product. Promoting Healthy Blood Glucose’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어느나라인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법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군요. 당뇨에 좋다는 아주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네. 그리고 나라에 따라서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있고, 약사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도 표현을 조심하고 싶습니다. 병의 진단이나 치료나 예방에 관한 것은 의사분들만이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저는 MIT의 박사이긴 하지만, 의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에 제한이 있고, 들으시는 분들도 조심하셔야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심해야합니다. 또 까닥 잘 못하면 환자들에게 나중에 큰 실망을 드릴 수가 있거든요.

 

그렇군요. 김박사님께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것은 언제이십니까?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1994-5년 기간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외무부/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미국에서 MIT에서 박사학위를 한다음, 캐나다 알버타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금융업을 창업을 하여서 상당히 성공한 상태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제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분을 많이 가진 호텔이 약 6개 정도 되었었고, 일본에서 당시 세계에서 제일 컸다는 부동산 개발회사의 금융 담당 부회장직을 수행했었고, 동시에 일본 토요타 자동차의 물류부분 자회사의 부사장직도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일본재계에서 성공한 편이었습니다. 회장실에는 보잉 747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잘 나갔었죠.

 

굉장하셨습니다.

운이 좋았었습니다. 신도 났었죠. 투자를 하는 것 마다 힛트를 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무선통신분야에도 투자를 하여 많이 돈을 많이 벌었었습니다. 그렇게 성공했다고 소문이 났더니, 당시 알베르타 주수상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박사 당신은 알베르타대학교수 출신으로서 국제비즈네스계에서 성공했다고 소문이 났다. 출신지의 산업을 도우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알베르타는 석유의 중심지로서, 석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하여, 하이테크에 많은 투자를 하였는데, 돈은 많이 들어갔으나, 실제로 상업화되어 성공한 것이 없는 것이 아쉽다. 특히, 캐나다는 밴팅박사가 인슐린을 발견한뒤, 당뇨병 연구의 종주국이고 해서, 알베르타주는 당뇨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였다. 예를들어, 95년 당시 이미 약 20년동안 4천만불을 쏫아부어 연구한 당뇨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직 상업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김박사 당신이 이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직접 한 번 본격적으로 상업화 시켜보지 않겠는가…라는 문의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호텔/금유/무선통신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었고, 내 주위에는 당뇨환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투자는 솔직히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수상실의 간곡한 권유가 있기도하고, 출신지를 돕는다는 생각도 있고해서, 에드먼턴의 수상실과 캘거리 대학 내의 당뇨 연구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벌써 20년 정도 전의 일이군요. 원래 주정부의 프로젝트였군요

네. 그런데, 그때 우연히 참 재미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알베르타 주의 수도 에드먼턴에도 호텔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수상실을 방문하기 위해 에드먼턴에 도착한 저는 당연히 제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했는데, 호텔 주인인 저를 알아보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고, 청소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만 있었습니다. 그 학생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 학생도 저와 같은 한국 출신이었고, 당시 의과대학생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과대학생 생활은 무자게 바쁜 데 어떻게 제 호텔에 와서 힘든 청소일을 하는가 물었더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렇다는 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덜 바쁜 직위로 옮겨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수상실의 하이텍 투자 팀들과 미팅을 그 다음날 하였고, 그 뒤에는 도시를 옮겨 캘거리대학의 당뇨연구팀과 미팅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뇨치료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문외한인 저로서는 솔직히 말해 무슨 말인지 어떤 기술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전문용어만 난무하였고…좋다고 하는 이야기 같기는 한데…정도의 판단만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당장에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일년에 약 200개 정도의 기술을 검토하였고, 10건 정도 투자를 하곤 했었는데, 투자를 하라는 당뇨기술은 저의 투자 매력 리스트에 전혀 포함시킬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우연한 일은, 그리고 나선 며칠 있다가, 앞에서 말한 그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청소하는 알바생이 회사의 오우너를 당돌하게 찾아오는 일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 청년이 제게 ‘자기가 박사님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할테니 무조건 믿어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왠지 그 청년이 제게 도움이 될 말을 할 것 같다는 믿음이 왔습니다. 그 청년의 말로는 제가 며칠 전 방문한 캘거리 대학의 당뇨 치료 기술은 자기가 의과대학생으로서 내용을 잘 아는 프로젝트이니, 묻지마식으로 무조건 투자를 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하셨군요. 과학적인 검토를 체계적으로 하셔서 시작한 것이 아니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캘거리로 가서 담당 연구진들과 다시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때도 이 기술이 왜 좋은지, 왜 중요한지,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다짜꼬자로 물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투자가 좋은 투자입니까 나쁜 투자입니까? 그 결론만 말해주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연구진들은 솔직한 저의 질문에 폭소를 터뜨리면서 ‘좋은 투자’라고 답을 하길레, 투자 결정을 그 자리서 해버리고 수표를 쥐어주고 사인한 계약서를 들고 밴쿠버로 돌아왔습니다. 투자라는 것이 많은 손실과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것이기에, 날린다고 해서 별로 신기할 것이 없다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산 가격에 조금만 더 얹어서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넘길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다지 큰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주 있다가 재미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제약회사였던 스위스의 R사에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은 자기들이 바로 그 당뇨 치료기술에 투자를 할려고 2년전부터 검토하였었는데, R 사는 워낙 큰 회사라서 내부 결정하기에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막상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그자리에서 결정해버릴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김박사의 회사가 먼저 그 기술을 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들에게 양보해주면, 제가 대학과 연구진에게 2 주전에 지불한 금액의 100배를 현금으로 외국의 조세피난처의 구좌에 입금시켜 줄테니 당장 자기들에게 양보하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수백억원의 돈을 금방 번것이거든요. 그 제안을 접한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큰 행운이 있으셨군요.

네…큰 행운이었죠. 저는 비즈네스를 시작하고 나서 여러가지 행운이 많았지만, 2주만에 100배를 남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편,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 기술이 뭐길레, 저 사람들이 저렇게 목을 매고 적극적으로 달라드는가하는 의문 말입니다. 제가 농장 주인이라고 상상을 해봅시다. 그런데, 석유 회사 간부가 와서 시세의 100배를 줄테니 당장 농장을 팔라고 보채면 그 의미가 뭐겠습니까? 제 농장밑에 석유가 있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양보하라면서 저를 보채는 정도가 보통이 아닌 겁니다. 저를 보채면 보챌 수록 저는 더 큰 의심이 생겼고. 심지어는 이 사람들이 저를 출장 가는 곳마다 쫓아오지를 않나. 심지어는 협박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듣다가 불쾌해서 주먹싸움까지 할뻔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사람들이 반드시 저를 망하게 하겠다는 협박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오기가 나서 제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도대체, 내 농장 밑에 무엇이 들어있길레, 석유회사가 저렇게 야단인가하는 농부의 심정으로. 도대체, 내가 산 당뇨치료기술이 뭐길래 세계에서 제일 큰 R사가 저렇게들 야단인가하는 당연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금 조사를 해보고 나서 그 결과에 저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내가 산 기술이 도대체 뭐지?라는 질문을 하셨다는 거죠? 재미나네요. 산사람이 자기가 산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말이네요.

결론인 즋은, 당뇨라는 병을 혈당만 임시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완치하려면 두가지가 이루어져야하는데, 바로 이 기술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에 일단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이야말로 전세계에 유일하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가지를 화학합성약이 아니라 천연약초로만 달성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더욱 놀랐습니다. (그 두가지라함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 건강의 회복과 인슐린 저항성을 몸에서 떨어뜨리는 두가지 일입니다. ) 그 즈음하여 제도 오기로 시간을 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전문가들에게 검토를 시켜보니, 과학적인 근거도 확실했고, 동물실험도 확실했으며, 제가 가지고 있던 몇몇 샘플로 주위의 중증 당뇨환자에게 실험을 해보니 예외없이 기적적으로 완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도 혈당이 조절이 안되며 실명상태에 있던 지인이 모든 합병증 증세가 다 없어지고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게된 당뇨환자들이 수술을 취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부작용도 없다는 것이 너무 놀라왔습니다. 당뇨약들이라는 것이 다들 부작용들이 심한 것이거든요. 이런 일이 계속 되면서 제게 점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게 놀랐고, 기뻤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이 프로젝트를 넘기지 않고, 내가 개발해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셨군요. 그 뒤 순조롭게 진행되셨나요?

전혀 아닙니다. 말도 마십시요. 순조롭다뇨. 제 일생의 가장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건 왜죠?

이 프로젝트를 마칠려면, 즉, 상품화하기에 필요한 인허가를 받아내고 그를 위한 임상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칠려면, 약 8억불이 들고 약 20년의 세월이 필요하며 그러고도 반드시 성공하면 모르는데 성공확률은 1% 미만이라는 겁니다. 하지 말라는 소리죠. 또, 거기다가 천연물에는 절대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허가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수십억불을 들여서 의사에게 마켓팅을 해야하고 광고도 대규모로 크게 해야한다는겁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런 프로젝트라는 겁니다. 당연히, 저의 사업파트너들과 제가 속한 그룹의 회장님은 No를 하셨죠.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론이죠.

 

그래서요?

그러나, 저는 왠지 이 프로젝트가 하고 싶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이 프로젝트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 때, 불란서 소설가 생텍쥐베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 Mais les yeux sont aveugles. Il faut chercher avec le coeur. (Le Petit Prince))” 그래서, 에라…하고 저는 제가 속한 회사가 추진하지 않겠다면, 혼자서라도 독자적으로라도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제가 속한 그룹과의 관계도 정리해버렸습니다. 많이들 섭섭하게 생각들 하셨죠. 고맙게도 그 때 제 처가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이 프로젝트는 (제 처가 보기에도) 망하는 것이 뻔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결국 망할때 망하더라도 해보고 망해야지 해보지도 않고 실패하면 평생 한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너무도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저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처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물건을 하나 사주었습니다. 샤넬핸드백이었습니다. 제처에게 '아마 이게 내가 당신에게 사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거야…'라고 말하고 사주었고, 제처도 비장한 심정으로 그 핸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호텔과 인터넷회사들 지분들을 하나씩 하나씩 팔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호텔들과 인터넷회사들이 참 좋은 호텔들과 참 좋은 회사들이었습니다.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도 지금 저는 아마 상당히 큰 부자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캐나다의 명승지의 한복판에 있던 고급호텔들이었고, IT시대의 총아가되는 그런 핵심기술을 가진 그런 인터넷회사들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돈을 대기 위해 그 좋은 것들을 하나씩 팔 적마다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치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돈이 많이 들었군요.

돈도 돈 이려나와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시간과 불확실성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하기는 할 프로젝트인지, 성공한다면 도대체 내 생전에 성공을 하기는 할 것인지… 모두 불확실했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공했다 하더라도, 당대에 성공하지 못하고 죽고나서 수십년이 지난 뒤에나 성공한 프로젝트는 얼마나 많습니까? 또 뭐 큰 문제라도 계속 발생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하면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신청을 해놓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손을 놓고 기다리는 세월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러다 내 인생이 그냥 허무하게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도 컸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오래 지속되니, 심한 우울증도 앓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진전이 있었는가 싶으면 다시 대기…끝도 없는 기다림입니다. 솔직히 말해,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어휴 그때 수백억 준다고 할적에 받을 걸…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할까 생각을 하면 바로 그때 이상하게 일이 큰 진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Prisoner of Hope라는 말이 나옵니다. '희망이라는 감옥에 같혀있는 죄수'라고 번역을 할 수 있는데, 제가 딱 그 신세였습니다. 돈이 끝도 한도 없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처분했습니다. 얼마가 들어갔는지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당시에는 계산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있는 재산을 팔고, 돈이 어찌 저찌 생기면 다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이런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모두 계산해보니, 약 2억불 정도 돈이 들어갔더군요. 세월을 약 15년 정도 걸렸구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8억불과 20년의 세월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액수, 훨씬 짧은 기간이었지만, 거대한 기업이 아닌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런 고통과 희생과 기다림을 처음부터 자세히 정확히 알았더라면 아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었을 겁니다. 8억불과 20년 그리고 성공확율 1%라는 숫자는 물론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 모든 비용과 인내를 제가 혼자 다 부담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파트너들이 생기고 저는 주주 중의 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지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돌이켜 보니 꿈만 같습니다.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단순히 효과가 있다는 것가지고는 저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민간에 전해지는 민간약…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그런 수준의 통속적인 믿음만으로 과학도인 저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학계의 인력을 총동원하여, 전세계의 유명 당뇨학자들에게 이 기술의 연구를 부탁드렸습니다. 앞에서 말한 청년이 알베르타 의대 졸업후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미국 하바드 대학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던 것도 전 세계 유명과학자들과 연결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노벨상 후보까지 올랐다고 하더군요) 결과적으론 예일대학 서울대학 청화대학등…아주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의 세계적인 연구자분들이 저희 제품을 연구/실험하게 되었는데(저희 회사 웹사이트 www.eastwoodcompaneis.com 에 가시면, 많은 유명 과학자들의 저희 제품에 관한 연구/실험 기록들이 나와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부탁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었습니다. 연구를 해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가 아니라 아에 연구나 실험자체를 해줄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안전한 천연 약초 당뇨약이 어디있냐는 겁니다. 말도 안되는 허황된 내용이라는 거죠. 세상에 그런 좋은 약이 어디있냐는 겁니다. 계속 부탁을 하고 간청을 하고 부탁을 하고 간청을 하고 해야 겨우 연구와 실험을 해주었죠. 자네가 그렇게 간청을 하니 해주긴 해주는데, 믿어서가 아니라 인생 망치지 말고 자네가 포기하라고 해주는 거야…하는 식의 태도였죠. 그러나 막상 실험과 연구를하고 나서는, 도대체 이게 무슨 약초들이냐며, 놀래곤 했습니다. 많은 분은 연구실적만 발표하신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직접 언론과 인터뷰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제품에 관해서 제3자이신 과학자들이 집필하신 책만 약 10권, 그리고, 언론에 노출된 회수만 약 2000건이 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돈을 드린 것도 아닌데, 유명한 과학자들이 실명으로 자진해서 그런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효하는 일은 여간 자신이 없이는 하지 않는 일이랍니다. 다른 소위 주류 과학자들이 편견을 가질 것을 알면서도 소신을 밝히는 양심적인 과학자들인 것이죠. 많은 과학자, 몇몇 당뇨협회는 ‘이상적인 당뇨완치제’라는 강한 표현을 쓰시면서 저희 제품을 칭찬해주셨습니다. 효과가 있는 것이야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런 오랜 과정을 거쳐서, 저희 기술이 도대체 어떤 경로를 거쳐서 그런 놀라운 효과가 발생하는가 왜 그런 효과가 있는가를 그런 방식으로 과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대학 한연구소가 아니라 여러나라 여러 연구소 여러 과학자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썼지만, 나중에 여러 나라의 허가를 받을 적에 국제적인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다각도로 축적된 이런 다양한 과학적인 데이타들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다른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제일 큰 어려움은 무었이었나요?

어려움은 위에서 말한 것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저희 규격에 맞는 올바른 재료 구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초창기에는 1인용 한달분 만들기에 약 3천불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규격에 맞는 약초를 구입해야했습니다. 약초를 구해오는 그 사람들은 그 약초들이 내가 꼭 필요한 줄 아니, 가격을 계속 더 올립니다. 1 인용 1달치 생산을 위해 약초값만 만불…까지 간적도 있었죠.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충분한 양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동남아를 몇년간 휘집고 다녔어도 규격에 맞는 약초 재료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을 따로 주시면, 약초 구하기의 어려웠던 일과,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을 통해서 저희가 약초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지 간증을 할까 합니다. 따로 두 시간 시간을 내어 주십시요. 정말로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간증이랍니다) 하여간, 이렇게 부지하세월로 돈을 쏟아부으면서 우울증이 걸려가면서 기다리는 세월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성공가능성 1%...돌이켜 보면 도대체 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 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종료 일자가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한 단계 실험 겨우 겨우 끝나고 나면, 그 결과를 가지고 정부에 허가를 신청해놓고 허가 나올 때까지 무한정 무작정 아무 보장도 없이 기다리는 것…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단계 허가를 신청하고 또 무작정 기다리면서 다시 우울증…정부에서 이거 고쳐라 그러면 고치고 나서 허가를 신청하고 다시 무작정 그리고 다시 우울증… 이런 세월이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결국 오는 것이겠죠.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너는 징역 10년…' 차라리 이렇게 형량이 정해지면, 기다리면 됩니다. 달력 한장 한 장 찢어가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는 것, 무기 징역…그게 정말로 더 괴로운 겁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크고 큰 성공을 기다리는 것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제약/Bio회사에서 정식 허가가 난다는 일은 사실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정치인이라면 대권을 쥐는 것이고, 운동선수라면 올림픽의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인부로 치면 땅을파다가 금광을 발견하는 것이고, 석유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제약/바이오회사의 많은 경우, 허가가 날수도 있는 가능성의 가능성이 좀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소문만 가지고도 주식가격이 폭등합니다. 그만큼 허가가 실제로 나온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허가가 나오는 회사는 참 드물고 보통 연구한다는 것만으로 주식을 팔아 먹는 회사들이 많죠. 부정직한 회사들도 많죠. 당뇨병의 경우, 그 시장은 엄청납니다. 미국의 예로들면, 당뇨병관련, 년간비용은 미국전체의 상업용부동산에 들어가는 일년간 렌트(월세)의 총합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뇨병치료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허가를 받는다면, 개념적으로는 그 나라의 상업용부동산을 다차지 하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자료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제출하고 기다리던 어느 세월이 계속되다가 아…이제 제가 제출할 자료도 더 이상 없고, 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라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왔습니다. 기다림도 이제는 너무 지쳐서 차라리 이 프로젝트는 이 정도 선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 제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순간을 말합니다. 노력도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노력할 것도 없는 그런 상태. 관련해서,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야…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처음 당선되던 바로 그날, 부모없이 크던 흑인아이 오바마를 길러주시던 백인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수락연설에 그이야기를 하면서 울음을 참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공부잘하고 똑똑했던 오바마, 부모없이 커가던 외손자 그 오바마가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그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보고싶으셨겠습니까? 그러나, 그 할머니께서 그 당선 몇시간 전에 야속하게도 돌아가신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한알의 밀알이 떨어지는 사건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제가 원래는 그렇게 성공했는데, 가진 재산 모든 것을 다 팔고 그저 허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것도 하도 기다리다가 우울증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어머니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허가가 나오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과 그 후 절차가 완전히 마치기 전에, 저희 직원이 '박사님 허가가 나왔습니다'라고 슬쩍 메모를 제게 찔러 넣어주었습니다. 너무나 슬픈 순간 너무나 기쁜일이 닥쳤는데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 지…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서 기쁘지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답니다. 이왕 주실 거면,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허가가 나오도록 해주시지…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희 어머니께서 하나님께, '제 생명을 거두어가시고 대신 아들에게 허가를 내게 해주셔요'라고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닌가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진 것이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런 감동적인 일이 있으셨군요. 인내심이 대단하십니다. 그 뒤론 어떻게 되셨습니까?

일단, 좋은 일이란 것이, 큰게 하나가 터지면, 계속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저희 제품은 광고나 선전이 필요없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비용이 수 십억불이 든다고 하던데, 저희 제품은 광고가 없이도 입에 입소문으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 의사선생님들이 자기들이 자기 돈내고 저희 제품을 사셔서 자기 비용으로 실험하여서 그 결과를 전문과학지고 언론이고 마구 발표를 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당뇨 전문의의 70%가 저희 제품을 알고 계시거나 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밥한끼라도 산 적이 없습니다. 저희 제품이 '효과와 안전성이 확실하고 양약과 같이 먹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양약을 줄일 수 있고, 많은 합병증을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유일한 제품'이라는 의견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쓸만하다 소문이 널리 펴졌습니다. 광고나 마켓팅이 없이도, 2015년 현재 30만명의 사용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통 만명 정도 흡족한 소비자 가운데 한 사람 정도의 소비자가 회사에 고맙다는 감사편지를 쓰는데, 저희는 이미 수백통의 편지가 있고 심지어는 동영상 간증도 백 개 가까이 있는데,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희 웹사이트에 일부 소개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나 아스피린 같은 상품들도 그렇게 많은 감사편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몇몇 국가원수들과 유명한 세계의 갑부들도 저희 제품을 드시고, 현재 3000명의 의사들이 권하거나 사용하고 계시고, 그중 많은 의사분들이 저희 회사 주식에 투자를 희망하셨고, 세계최고의 제약회사들이 합작하자고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과장 광고등을 감시하는 캐나다 소비자보호 광고 허가 기관으로부터 저희 제품에 관해서는 '세계최고(World Number One)의 혈당정상화 제품이다'는 광고를 해도 (과장광고가 아니여서) 된다는 엄청난 허가마저도 나왔습니다. 아직 그 광고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그 광고를 쓰기 시작하면 효과에 다들 놀라겠죠. 대사 증후군관련,치매, 고혈압, 항산화제품, 어린이 학습장애치료등 40개 정도의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속속 성공하였고, 캐나다 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상당 수의 허가를 속속들이 받았습니다. 허가라는 것이 처음에 받는 것이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지, 막상 하나를 받고나면 정부에서도 우리 회사에 대해 신용이 생기는지 그 뒤로는 쉽게 여러개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각 나라에 따라 저희 제품은 약으로 건강식품으로 또는 식품의 여러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나라에 따라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특정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저희 제품이 무슨 효능이 있는가는 반드시 확인하고 사용하셔야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어느 특정 제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들의 당뇨병이 치료되는 것을 보고 저희 회사의 주식에 투자를 희망하셨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 2014년에는 캐나다 자회사만 본사에서 따로 떨여져나와 그 자회사가 성공적으로 캐나다의 토론토 주식시장에 정식 상장(IPO)하는데 성공했습니다. (EBM:TSX.V) 법률상 제가 주식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하는 것이 지극히 제한되어있어서 자랑은 하지 못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요.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죠. 한 번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저도 사내 대장부로서 인류를 위해서 큰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다른나라 시장도 속속 상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밴쿠버 리치몬드 본사에서 생산시설을 확장하느라고 큰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야단입니다. 작년말에 생산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주문에 응하지 못하고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지금도 생산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번에 20배 정도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공사하시는 분들이 열심히 하고 계시고, 설비등 주문도 올초에 전부 마쳤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겁니다. 기도해야죠.

 

부인께서도 기뻐하셨겠어요?

물론이죠. 저는 상장하기 한참 전에 주식을 제처와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는데, 큰 가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고의 남편이 된 것 같아 으쓱했었습니다. 돈이 결국 벌려서 기뻤던 것도 당연히 있지만, 원래 공부를 참 잘하던 남편, 성공했던 남편이 뭔가 하나에 미쳐서 재산이고 건강이 다 날려버리고 실패한 사람으로서 비참한 일생을 마칠까봐 걱정 걱정하던 제 처가 안심하고 행복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했습니다. 전에 '이게 마지막'이라면서, 핸드백 하나를 최후(?)의 선물로 사주고 시작했던 비즈네스였는데 이 만큼 성공을 했으니 제처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감사합니다. 아이들도 많이 도왔습니다. 법률/재무는 변호사인 큰 딸이, 디자인은 미술 전공한 둘째가, 생산은 화학전공한 막내가…이런 식으로 많이 도왔습니다. 자기들도 한 참 바쁠적에 아버지의 사업을 돕겠다면서 고생들 많이 했습니다. 모두들 고맙죠. 가족들이 제게는 참 귀합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지금 전세계의 여러나라에서 활발하게 매출이 증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규격에 맞는 재료들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단일 단지로서는 세계에서 최고로 큰 약초단지를 아시아 지역에 조성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최신 농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제품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매출이 증가한 상품들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제 희망은 저희 제품을 통해서 많은 분이 건강을 되찾고, 저희와 같이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계속해서 다양한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저희 제품을 취급하시는 사업자들이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와 저희 제품을 믿어주시고 저희 제품을 판매하시는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부자가되도록 제가 최대한 노력을 할것입니다. 제 친구들 중 젊어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삼성전자에 취직을 하여서 은퇴한 친구들이 많은데, 상당한 부자들이 되어서 은퇴했습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건희 회장님을 존경합니다. 저도, 저와 같이 사업하시는 판매자분들이 모두 큰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좋아하시는 성경구절 하나 소개 해주시죠. 계시록 22;2입니다. Leaves are for the healing of nations.
 
이 웹사이트는 2008년 캐나다 의약품당국인 Health Canada의 검증을 거친 www.eastwoodcompanies.com의 한국어 번역판입니다. 캐나다 회사인 Eastwood Bio-Medical Research Inc.이 캐나다, 미국 등에 거주하는 한국어 사용자를 위해 운영하는 웹 사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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